skip to content
Rosinante999 Logo Rosinante999
Table of Contents

①편에서 가상화폐의 발명품은 “관리자 없는 신뢰”라고 했다. 이번 편은 그 신뢰를 만드는 기계 — 블록체인 — 의 뚜껑을 연다.

용어 자체는 어디서나 들리지만, “블록이 체인으로 연결된 것”이라는 설명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내가 이해에 도달한 경로는 하나의 비유였다.

어느 마을이 은행 없이 장부를 운영하기로 했다.

마을 공동장부 — 분산원장의 직관

은행이 없는 마을을 상상한다. 주민들은 거래를 기록할 장부가 필요한데, 한 사람에게 맡기자니 그가 몰래 고칠까 걱정이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쓴다.

  1. 장부의 사본을 주민 전원이 한 부씩 갖는다.
  2. 누군가 거래를 하면 마을 광장에서 외치고, 모두가 각자의 장부에 같은 내용을 적는다.
  3. 장부끼리 내용이 다르면 — 다수의 장부와 일치하는 쪽을 진짜로 인정한다.

이것이 분산원장(distributed ledger) 의 전부다. 한 부를 고치는 것은 쉽지만 과반의 사본을 동시에 고치는 것은 어렵다 — 신뢰가 ‘관리자의 양심’이 아니라 ‘사본의 수’에서 나온다.

여기서 마을의 주민 한 명 한 명이 노드(node) 다. 실제 비트코인 네트워크에는 이런 장부 사본을 든 노드가 전 세계에 수만 개 있고, 누구나 노드가 될 수 있다. 관리 주체도, 본사도, 서버실도 없다.

블록·해시·체인 — 장부를 봉인하는 기술

그런데 사본만으로는 부족하다. 과거에 적은 내용을 누가 슬쩍 고치면 어떻게 알아챌 것인가. 여기서 두 가지 장치가 들어온다.

장치 1 — 해시(hash): 데이터의 지문. 해시 함수는 어떤 데이터든 고정 길이의 문자열로 바꿔 주는 수학 함수다. 성질이 독특하다.

  • 같은 입력 → 항상 같은 출력 (지문은 변하지 않는다)
  • 입력이 한 글자만 달라져도 → 출력이 완전히 달라진다 (눈사태 효과)
  • 출력에서 입력을 역산할 수 없다 (일방향)

장부 한 페이지를 해시에 넣으면 그 페이지의 지문이 나온다. 페이지 내용을 점 하나라도 고치면 지문이 통째로 바뀐다.

장치 2 — 체인: 지문의 연쇄. 블록체인의 결정적 아이디어는 여기다. 다음 페이지의 머리말에 앞 페이지의 지문을 적는다. 거래 묶음 한 페이지가 블록이고, 앞 블록의 해시를 품은 채 이어지는 구조가 체인이다.

블록 해시 체인의 구조 — 앞 블록의 지문이 다음 블록에 박힌다

왜 위조가 사실상 불가능한가 — 도미노의 수학

이제 누군가 석 달 전 거래를 고치려 한다고 하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1. 석 달 전 블록의 내용을 고친다 → 그 블록의 지문(해시)이 바뀐다.
  2. 다음 블록에 적힌 ‘앞 블록 지문’과 안 맞는다 → 다음 블록도 다시 만들어야 한다.
  3. 그 다음 블록도, 그 다음도… 석 달치 블록 전부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4. 그렇게 만든 가짜 장부를 들고 가도 — 네트워크 과반의 장부와 다르면 버려진다.

한 글자를 고치는 비용이 ‘그 이후의 역사 전체를 다시 쓰고, 전 세계 노드 과반을 설득하는 비용’이 되는 구조다. 그리고 블록을 만드는 데는 실제 비용(연산 또는 보증금 — ③편의 주제)이 들기 때문에, 이 공격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을 넘어 경제적으로 손해다.

위조 시도가 실패하는 구조 — 한 블록 수정이 일으키는 도미노

장부를 지키는 것은 보안 프로그램이 아니라, 위조가 수지에 안 맞는 구조다.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바로잡는다. 뉴스의 “코인 해킹 사건”은 거의 전부 블록체인이 아니라 그 주변 — 거래소 서버, 개인 지갑의 열쇠, 브릿지(⑨편) — 이 뚫린 것이다. 장부 자체가 위조된 사건은 주요 체인에서 사실상 없다. 금고는 튼튼한데 열쇠 관리에서 사고가 나는 것이고, 그래서 ⑦편(지갑)이 실무의 핵심이 된다.

직접 확인해 보기 — 블록 탐색기

이 장부의 흥미로운 점은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다는 것이다. 블록 탐색기라는 사이트에 들어가면 지금 이 순간의 거래들이 실시간으로 적히는 것을 볼 수 있다.

  • 비트코인: mempool.space — 블록이 약 10분마다 쌓이는 것이 보인다
  • 이더리움: Etherscan — 주소를 넣으면 그 지갑의 모든 거래 내역이 나온다

은행 장부는 은행만 보지만, 이 장부는 전 세계가 본다. 투명성이 기본값인 금융 — 처음 탐색기를 열어 봤을 때의 낯선 감각을 기억한다. ⑥편(영지식 기술)은 거꾸로 이 투명성 위에서 프라이버시를 어떻게 지키는가의 이야기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장부가 공개라면 내 잔액도 다 보이나?

A. 주소의 잔액과 거래 내역은 모두 공개다. 다만 그 주소가 ‘누구의 것인지’는 장부에 없다 — 익명이 아니라 가명의 세계다. 거래소 실명 계좌와 연결되는 순간 추적이 가능해지고, 그래서 자금세탁에 오히려 불리하다는 역설도 있다. 프라이버시를 다루는 기술은 ⑥편에서.

Q2. 노드가 수만 개라는데 누가 왜 운영하나?

A. 채굴·검증 보상을 받는 노드도 있고(③편), 보상 없이 검증만 하는 노드도 있다. 후자는 “내 돈의 장부를 남에게 맡기지 않겠다”는 동기 — 직접 장부를 들고 직접 검증하는 것이다. 참여 비용이 낮을수록(가정용 PC로 가능) 탈중앙성이 높다고 평가하며, 이것이 ④편 트릴레마의 한 축이 된다.

Q3. 블록체인이 그렇게 좋으면 왜 은행은 안 쓰나?

A. 쓰고 있다 — 다만 ‘누구나 참여하는 공개 체인’이 아니라 허가받은 기관만 참여하는 프라이빗 체인 형태가 많다. 공개 체인의 핵심 가치(검열 저항, 무허가 참여)와 금융기관의 요구(통제, 규제 준수)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같은 기술, 다른 철학이다.

Q4. 양자컴퓨터가 나오면 다 뚫린다는데?

A. 장기적으로 유효한 질문이다. 현재 암호 체계 일부는 충분히 강력한 양자컴퓨터에 취약할 수 있고, 그래서 양자내성 암호로의 전환 연구가 이미 진행 중이다. 다만 이는 블록체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은행·군사·인터넷 전체의 문제이고, 위협이 현실화되기 전 전환할 시간과 경로가 있다는 것이 주류 평가다.

← 이전 편: 가상화폐의 작동원리 ① — 가상화폐라는 자산

→ 다음 편: 가상화폐의 작동원리 ③ — 합의의 작동원리